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성 패미콤 (문단 편집) == 소개 == [[1982년]]부터 금성사(현 [[LG전자]])에서 판매한 8비트 개인용 컴퓨터 시리즈. 1982년에 [[대한민국 제5공화국|전두환 정권]]에서 [[1983년]]을 '정보산업의 해'로 선언하고 그 시작으로 5000대의 컴퓨터를 각급 학교에 보급하는 계획을 세우면서 5개 민간업체를 선정했다. 삼보전자엔지니어링(현 [[TG삼보]])의 '트라이젬 20'([[애플 II]] 호환 기종), [[삼성전자]]의 [[SPC-1000]], 한국상역(현 한국컴퓨터)의 '스포트라이트 1', 동양나이론(후의 효성컴퓨터)의 '하이콤8'과 함께 금성사의 금성 패미콤이 선정되었고 각급 학교에 보급되었다.[* 이 중 스포트라이트1 과 하이콤8은 일찍 철수했기 때문에 어느 기종의 복제품인지 정보가 부족한 상태. 두 기종 모두 이미 1980년대 중반에 매체에서 흔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스포트라이트1의 경우는 Radioshack TRS-80의 클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담으로 동양나이론은 재빨리 하이콤8을 포기하고 [[애플 II]]의 클론으로 소프트웨어가 많은 PC-8000을 개발하여 당분간 이를 주력으로 민다. 애플 II 클론이지만 트라이젬이나 세운상가 복제품과는 달리 CP/M 카드를 내장하고 나름 몇가지 커스터마이징을 해서 내 놓은, 나름 좀 생각했던 기종이다. ] 가장 처음 발표된 모델이자 당시 정부의 교육용 컴퓨터로 선정된 기종은 FC[* '''F'''amily '''C'''omputer의 약칭. 공교롭게도 [[닌텐도]] '''[[패미컴]]'''과 동일한 이름이다.]-100. 금성사는 자체 개발인 것처럼 홍보했지만 FC-100 에뮬레이터 개발자의 [[https://fc-100.blogspot.com/2013/01/fc-100_4829.html|글]]에 따르면 일본 [[산요전기]]의 PHC-25와 [[NEC]]의 PC-6001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대의 경쟁기인 삼성전자의 SPC-1000은 일본 [[샤프전자]]의 MZ-80K를 기반으로 했고 조금 뒤늦게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대우전자의 IQ-1000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MSX]] 규격을 채용한 기종이기 때문에 초창기 우리나라 개인용 컴퓨터, 특히 대기업 컴퓨터의 기술은 일본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셈이다. 출시 초기에는 금성사에서 의욕적으로 보급에 나섰으나 ~~그 당시의 국산 PC가 다 마찬가지이지만~~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판매 부진에 빠진다. 출시 초기부터 마케팅과 분위기 확산에서 우위를 가진 삼성전자의 SPC-1000, 미국 [[Apple|애플]]사의 하드웨어를 그대로 복제해서 적어도 가격 경쟁력과 소프트웨어의 다양성에서 우위를 보인 세운상가제 [[애플 II]]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분위기였다. 당시에 개인용 컴퓨터는 매우 비쌌기 때문에 보급이 어려웠는데 삼성전자와 금성사 모두 컴퓨터 전시장을 설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금성사는 종로와 서초동 등지, 삼성전자는 신사동 등지에 컴퓨터 전시장이 있었고, 각사의 컴퓨터 판매장 역시 어느정도는 전시체험이 가능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여담으로 MSX 호환 기종을 내놓은 후발주자 대우전자 역시 논현동(위치는 삼성전자의 신사동 전시장과 가까웠다. 훗날 역삼동으로 이전.)에 전시장을 설치했던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문물인 '컴퓨터'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홍보 전략을 택했는데 삼성전자에서는 그에 더하여 소프트웨어 공모전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개최해 소프트웨어 부족을 타개해보려는 시도를 하였고, 견학과 특판 등의 마케팅을 통해 특히 구매력이 있는 학교와 학원을 중심으로 홍보했으며, 컴퓨터 경진대회를 개최[* 컴퓨터 경진대회 개최는 대우전자 쪽이 더 적극적이었다.]하는 등의 다양한 전략을 가졌다. 그리고 그 결과 금성 패미콤은 1984년 무렵에는 경쟁에서 두드러지게 밀리기 시작하여 사실상 1985년 초반이 되면 거의 마케팅도 안 하고 제품은 재고나 파는 수준으로 전락했으며 실질적으로 패미콤 시리즈의 마지막 제품인 GFC-1080에 이르면 아예 '패미콤' 브랜드를 내다 버리고 모델명만 표기하기 이른다. 이후 금성사는 1989년 [[교육용 PC 사업]]에 [[IBM PC 호환기종]]으로 다시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때까지 사실상 개인용 PC 시장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상태가 되었다.[* 1980년 중반부터 금성 마이티 시리즈라는 브랜드로 IBM PC 호환 기종을 생산하고는 있었으나 제조사를 막론하고 1989년 이전에는 IBM PC 호환 기종은 업무용 시장이 주 타겟이었다. 금성사는 [[교육용 PC 사업]] 이후에도 상당기간 '마이티' 브랜드를 유지했다.] 결국 이로 인해 오늘날 금성 패미콤을 기억하는 것은 나이 지긋한 1970년대생 이상의 컴덕후 사이에서도 좀 하드코어한 사람들 일부 밖에는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이 잊혀진 기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